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붉은 광장 (문단 편집) == 주변의 명소 == 가보면 에버랜드나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경관이 예쁘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군대 퍼레이드가 본래 이미지를 오히려 망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berian gate.jpg|width=100%]]}}} ||'''부활의 문(Воскресенские ворота)'''[br]부활의 문은 붉은 광장의 북서쪽에 세워진 문으로, 붉은 광장과 마네쥐 광장을 잇고 있다. 1535년에 처음으로 지어졌고, 이후 옆에 대규모 예배당이 세워지면서 성지로 떠올랐다. 거지부터 차르까지 모든 러시아인들이 이 곳을 방문할 때에 옆의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렸고, 몇 시간씩 기도를 올리는 경우도 흔했다. 다만 1931년에 소련 당국이 군용 차량이 지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예배당과 문을 헐어버렸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인 1995년에야 다시 복구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tate Historical Museum, Red Square, Russia.jpg|width=100%]]}}} ||'''국립 역사 박물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сторический музей)'''[br]국립 역사 박물관은 러시아를 상징하는 박물관들 중 하나로, 러시아 역사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러시아 제국]], [[소련]]을 거쳐 현대 러시아까지 모든 시대의 유물들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특히 [[로마노프 왕조]]의 황실 소장품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1872년에 처음으로 지어져 1800년대 후반에는 차르도 즐겨 찾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으며, 1900년대 초까지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소련 시대에는 구시대의 유물 청산을 이유로 박물관에 그려져 있던 성화들이 회칠되었으며, 유물들도 모두 국유화되었다. 다만 [[소련 붕괴]] 이후인 1998년에 다수 복구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oscowkremlin.jpg|width=100%]]}}} ||'''모스크바 크렘린(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br][[크렘린]]은 러시아 제국, 소련, 그리고 현대 러시아까지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냉전]] 시기에는 [[동구권]]과 [[제2세계]]의 최고 권력 중심이었다. 1100년도에 처음으로 지어져 확장을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러시아 대통령 관저이기도 하며 러시아 정부 청사가 입주해 있다. 내부에는 수많은 성당들과 궁전, 그리고 탑들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ummoscow.jpg|width=100%]]}}} ||'''굼(ГУМ)'''[br][[굼]]은 러시아 최고의 백화점으로, [[예카테리나 대제]] 시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국영 백화점으로서 1,200여개의 고급 상점들이 들어서 당 간부들이 애용하는 고급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통치기에 잠시 사무실로 용도변경되었다가, 1953년에 다시 백화점으로 바뀌었으며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각종 용도 전환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백화점으로 사용되었다. 소련이 해체된 후에는 완전히 사유화되었으며, 2020년 기준으로 100여 개에 달하는 최고급 브랜드들이 입점하여 있으며 러시아에서 제일가는 백화점으로 꼽힌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aintbasilsmoscow.jpg|width=100%]]}}} ||'''성 바실리 성당(Собо́р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br][[성 바실리 성당]]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 성 바실리를 모신 성당으로, 1555년에 [[이반 4세]]의 시기에 지어졌으며 이래로 러시아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1600년에 이반 대제의 종탑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9개의 러시아식 양파형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잔틴 양식과 러시아 전통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소련 시기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으나, 소련 붕괴 후인 1997년부터는 다시 [[러시아 정교회]]에서 매주마다 제례를 올리고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azanmoscow.jpg|width=100%]]}}} ||'''카잔 성당(Казанский собор)'''[br]카잔 성당은 붉은 광장은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성당이다. 본디 1612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꺾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이후 차르와 총대주교의 관심 아래에 모스크바 최고의 성당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다만 소련 시대에 군사 퍼레이드를 할 때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으로 철거당했고, 소련이 해체되고 난 직후인 1993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복구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leninmausoleum.jpg|width=100%]]}}} ||'''레닌 영묘(Мавзолей Ленина)'''[br][[레닌 영묘]]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태두이자 혁명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의 무덤이다. 1924년 레닌의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을 [[엠버밍]]하여 공공에게 전시해놓고 있으며, 이덕분에 소련 시기에는 성지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에는 그의 시신도 엠버밍되어 레닌 곁에 놓였으나, 후계자인 [[흐루쇼프]]가 반스탈린 운동을 펼치면서 스탈린이 격하되며 스탈린의 시신은 화장되어 인근의 크렘린 벽 묘지로 이장되었다. 현재는 레닌의 시신도 화장하여 인근으로 이장하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기는 하나, [[러시아 공산당]]의 극렬한 반대로 실현은 되지 않고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remlinnecropolis.jpg|width=100%]]}}} ||'''크렘린 벽 묘지(Некрополь у Кремлёвской стены)'''[br][[크렘린 벽 묘지]]는 1917년 11월에 만들어진 소련 시절 최고의 국립묘지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 백명에 달하는 위인들이 이 묘지에 잠들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게오르기 주코프]], [[막심 고리키]], [[이오시프 스탈린]], [[유리 가가린]], [[유리 안드로포프]] 등 소련의 유명인사들이 이 곳에 묻혀 있다. 이들 중에서도 스탈린이나 [[세묜 부됸늬]] 등 특별한 인물들은 그 앞에 흉상이 따로 세워져 있다. ||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광장의 색깔이 붉지도 않으며[* 붉은색을 굳이 찾자면 크렘린 성벽 등 붉은 계통의 색상이 없지는 않으나, 광장의 전체적 색상은 그렇지 않다.] 광장은 공산혁명 이전부터 있었으므로 상징색이 [[붉은색]]인 [[공산주의]]와는 관계없다. 상술했다시피 원래 중세 러시아어에선 '붉은색'이랑 '아름다움'이 같은 단어라 원래 러시아인들 본인들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으로 명명한거다. 하지만 [[크렘린]]의 벽 옆에 있는 [[레닌 영묘]]에는 방부 처리가 된 소련의 국부 [[블라디미르 레닌]]의 박제된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그 바로 뒷편 크렘린 성벽 아래에는 공산당의 핵심 인물들과 [[적백내전]], [[독소전쟁]]에서 활약한 장군들이 묻힌 [[크렘린 벽 묘지]]가 있다. 현재 붉은 광장은 대조국전쟁[* Великая Oтечественная Bойна(볠리까야 아쪠쳬스트볜나야 바이나) 러시아에서 [[독소전쟁]]을 부르는 명칭.] 승전 기념 [[승리의 날|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는 등 지금도 많은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이 퍼레이드는 참전 용사만이 참관할 수 있고 일반인은 TV 중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리허설은 직접 관람 가능.] 2007년부터 매년 붉은 광장에서 국제 군악대 축제가 열린다. 정식 행사 명칭은 붉은 광장 옆에 있는 탑의 이름을 딴 '스파스카야 탑 축제(Spasskaya tower). [[러시아군]] 군악대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군악대가 참석해서 공연을 펼친다. 이 중에는 '''[[독일연방군]] 군악대'''도 참석하기 때문에 위에도 언급했듯이 [[승리의 날]] 행사장이 이곳임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할 수 있다. [[http://youtu.be/nokrmkPidoM|2010년 축제 당시 독일군 군악대의 공연 모습]] 이곳만 제대로 둘러보려고 해도 하루 날 잡고 봐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입구의 부활의 문,[* 여기서 어깨 뒤로 동전을 던지는 풍습이 있으며 분장하고 사진 찍어주는 장사꾼이 많다. 1931년에 [[스탈린]]이 군사퍼레이드에 방해가 된다면서 철거했다가 1995년에 복원되었다.] 그리고 들어가면 왼쪽에는 카잔 성당,[* 1936년에 [[스탈린]]의 지시로 철거되어서 공원이 되었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다.] 정면에 그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이 이곳에 세워져 있으며 그 앞에는 연단이 있다.[* 바실리 성당과 연단은 소련 시절에도 무사했지만, 성당은 박물관으로 개조되고 연단은 분수대가 되는 등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이 연단은 차르의 칙령을 반포할 때 사용됐으며 죄인을 참수하거나 대주교의 축복 의식에서도 사용되었다. 그 맞은 편에는 국립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국립역사박물관 앞에는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동상이 있고 옆으로 가면 무명용사의 묘가 있으며 여기서 위병 교대가 이루어지는데 꽤 볼만하다.][* 국립역사박물관은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지시로 외부 장식과 내부 구조가 모두 뒤바뀌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원래 부활의 문을 철거할 때 같이 없애버리려고 했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박물관은 본래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건물이었으며, 외형이 상당히 멋지다. 크렘린 쪽에는 레닌이 100년 전 살아있던 시절 모습 그대로 [[엠버밍]]되어 누워있는 레닌의 묘가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모스크바의 대표 백화점 [[굼]][*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альный Магазин의 약자. 직역하면 국립 백화점. 사실은 민영화되어 국영이 아니지만 굼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있다. 1953년에 백화점으로 개점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들을 다 둘러보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바로 옆에 있는 크렘린이나 알렉산드롭스키 광장, 트베르스카야 거리까지 둘러본다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낮에 오는 경우가 많지만 야경도 볼만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